여타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모터레이싱 또한 예측 불가능한 스포츠다. 경기 특성 상 경기 중 차량이 항상 트랙 위에 있을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스스로의 실수든 혹은 다른 외부 요소로 인한 이유로든 차량은 트랙을 벗어날 수 있다.
F1 경기장에는 드라이버와 팀 크루원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경기를 보는 관중, 경기 운영을 위해 힘 쓰는 마샬, 중계를 위한 대형 모니터, 경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일하는 트랙 스태프들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F1 머신은 트랙을 벗어나 심지어는 날아가버리는 경우도 있기에, 경기장에 있는 사람들은 F1 차량이 관통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벽 뒤에 있어야 한다. 시속 300km가 넘는 F1 차량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로 있다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터레이싱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통제 불가능해진 차량으로부터 드라이버와 사람들을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안전을 위한 장치 중,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던 런오프 에어리어(Runoff Area)에 이어 이번 포스팅에서는 F1 경기장의 배리어(Barrier)를 다뤄보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배리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그 배리어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목차]
- 가속(Acceleration)이란?
가속의 2가지 요소
가속의 단위, g
- 감속 시간을 고려한 배리어 디자인
- 배리어가 진화한 이유
- 배리어의 변화 #1 : 지푸라기 더미 (Straw Bales)
- 배리어의 변화 #2 : 캐치 펜스 (Catch Fence)
- 배리어 만들 시 고려사항 : 충격의 각도 (Angle of Impact)
- 배리어의 변화 #3 : 콘크리트 월 (Concrete Wall)
- 배리어의 변화 #4 : 가드레일 (Guardrail)
- 배리어의 변화 #5 : 타이어 월 (Tyre Wall)
개선 #1 : 타이어 월 체이닝
개선 #2 : 벨트로 두르기
개선 #3 : 플라스틱 튜브 삽입
- 배리어의 변화 #6 : 텍프로 (Tecpro)
영국의 소설가인 더글라스 애덤스(Douglas Adams)는 이렇게 말했다.
“널 죽이는건 추락(fall)이 아니다.
추락 후 끝에서 오는 갑작스러운 멈춤이다.”
It's not the fall that kills you; it's the sudden stop at the end.
가속(Acceleration)이란?
충돌로 인해 심각한 부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가속(acceleration)'이다.
가속이란, '속도의 변화율'이다. 가속은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만들어 낸다. 만약 시속 0km에서 시속 200km로 가속한다고 해보자. 아주 천천히 가속하면 아무 느낌도 안 든다. 하지만 F1 차량이나 비행기 같은 탈것들은 순식간에 시속 200km에 도달한다. 0km/h에서 200km/h까지 점진적으로 도달하지 않고 굉장히 빠르게 도달하게 되면 몸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다.
참고 | 가속과 감속
가속과 감속은 똑같은 개념이다. 0km/h → 200km/h이 3초라면, 200km/h → 0km/h도 3초다. 그저 방향만 다를 뿐이다.
가속의 2가지 요소
가속의 2가지 요소는 '속도의 변화'와 '변화에 걸린 시간'이다.
만약 단단한 벽에 100km/h로 달리는 차량이 충돌한다고 해보자. 이때 충돌로 인해 차량이 0.002초만에 정지하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100km/h는 28m/s이고, 이러면 가속은 28m/s / 0.002s = 14000m/s^2가 되고 이는 약 1427g의 힘 (1g = 9.8m/s^2)에 해당한다. 이러한 충격은 드라이버의 뇌, 장기 등 신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해 영영 제 기능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가속의 단위, g
https://www.youtube.com/watch?v=oIKel6jVD3Q&ab_channel=FORMULA1
F1 경기의 충격은 보통 g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2021년 영국 그랑프리에서 막스는 해밀턴과의 충돌로 인해 배리어에 부딪히게 되었고 이때 충격은 51g였다.
그럼 g는 무엇을 의미할까? g는 g-force를 줄여 부르는 말로 가속의 단위이다. 1g는 산술적으로 9.8m/s^2이다. 속도가 1초당 9.8m/s (= 35.28km/h) 만큼 변한다는 의미이다.
공도에서 시속 100키로로 달리다가 브레이킹을 한다 치면, 대략 0.67G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제동거리 55미터로 가정)
감속 시간을 고려한 배리어 디자인
F1 경기장의 배리어의 디자인키 요소는 '감속의 시간의 증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충격의 거리를 늘릴 수 있다.
앞서 본 수식에서 분모에 시간의 변화가 들어가는데, 분모를 크게해서 충격량을 줄인다는 의미이다. 감속(deceleration) 충격량을 줄이는 능력을 '운동량 흡수하는 능력' 또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배리어는 결국 차량과 드라이버에게 가해지는 충격량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배리어가 진화한 이유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에너지는 속력의 제곱에 비례한다. 100km/h로 달리는 차보다 150km/h로 달리는 차는 2.2배의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200km/h는 4배의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이를 이해하면, 이제 충돌 배리어의 역할이 생기기 시작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미리 스포하자면, 차량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배리어의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자.
배리어의 변화 #1 : 지푸라기 더미 (Straw Bales)
과거로 돌아가보자. 사진과 같이 예전에는 배리어가 그냥 지푸라기 더미로 되어있었다.
당시 레이스는 마을, 에어필드, 비행장, 공도에서 이뤄졌고, 여기에는 드라이버들이 부딪히기 싫은 나무, 가로등, 전봇대, 단단한 벽 등이 있었다. 당시 구하기 쉬웠던 것이 지푸라기 더미이다. 지푸라기 더미들은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기도 하고, 구하기도 쉽고,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량의 운동에너지를 줄일 수 있었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부딪힌다는 것은 그 물체가 가진 운동에너지가 다른 물체로 이동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면에서 지푸라기 더미는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로 차량이 지푸라기에 걸려 뒤집어질 수도 있다. 경기 중에 차량이 뒤집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뒤집어지는 상황을 면하더라도 차량이 스핀할 수도 있고, 이는 채찍처럼 차량이 벽에 내둘러져 큰 부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둘째로 지푸라기 더미가 터지기라도 하면 바닥에 지푸라기 찌꺼기들이 흩뿌져려 트랙 노면을 그립을 낮춰 미끄럽게 만든다.
셋째로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지푸라기는 불에 아주 잘 탄다. 예전 이탈리아 출신 F1 선수인 로렌조 반디니(Lorenzo Bandini)는 1967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지푸라기에 걸려 갖힌 채로 불이 붙어 사망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로 인해 1970년 이후 지푸라기 더미를 배리어로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배리어의 변화 #2 : 캐치 펜스 (Catch Fence)
캐치 펜스 즉, 날라가는 차량을 '잡아주는 울타리'는 차량을 잘 잡아줌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꽤나 인기가 있었던 배리어였다.
가장 심플한 캐치 펜스의 디자인은 울타리 여러 개를 연결하는 형태였다. 이런 형태의 울타리는 차량이 울타리로 날라올 때 울타리의 모양이 변형되면서 마치 그물처럼 차량을 낚아채고, 이로 인해 충격 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충격시간이 길어져서 충격을 잘 흡수하게끔 했다.
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이 캐치 펜스에도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너무 변형이 잘 돼서 잡는 것까지는 좋지만 거기서 드라이버를 구출해 내는 것이 어려웠다. 복잡하게 얽힌 울타리 안에 갇혀 만약 불이라도 난다면..? 실제로 1981년 남아공 그랑프리에서는 이 울타리에 갇혀 목이 졸려 질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둘째로 울타리가 너무 변형이 잘 되어서 울타리를 고정하는 폴(기둥)이 날라가 드라이버를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같은 남아공 그랑프리에서 영국 출신의 드라이버 Geoff Lees는 울타리 기둥에 맞고 사망했다.
셋째로 이렇게 변형되면 복구가 어려워, 한번 캐치 펜스에 크게 부딪히면 레이스 딜레이는 불가피했다.
이러한 단점으로 캐치 펜스 또한 금지되었고, 현재 캐치 펜스라 불리는 현대의 캐치 펜스는 강화된 펜스로 메인 컴포넌트는 변형되지 않고 고정되어있는 형태의 펜스이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