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경기의 해설을 잘 들어보면 "이 트랙에서는 팀들이 대부분 원-스탑(1-stop) 전략을 가져갈 것 같은데요" 또는 "투-스탑(2-stop) 전략이 기본이겠지만, 몇몇 팀들은 원-스탑(1-stop) 전략을 취할 수도 있겠어요" 와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들린다.
트랙 별로 어떤 요소들이 그 트랙에서의 최상의 전략을 결정하는 것이며, 팀들은 대체 어떻게 계산해서 원-스탑(one-stop) 또는 투-스탑(two-stop) 전략 더 나아가서 쓰리-스탑(three-stop) 전략을 취하는 것일까? 팀별 전략 담당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번 포스팅에서는 F1 경기에서의 레이스 전략의 기초에 대해 살펴보자.
요소1 : 랩타임과 피트스탑
일단 먼저 복잡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단순한 모델로 생각해보자. 레이스가 총 10바퀴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해보자. 가로 축을 랩 수(the number of laps), 세로 축을 랩 별 랩타임(Laptime per lap)이라고 했을 때, 미디움 타이어를 착용했을 때와 소프트 타이어를 그래프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해보자.
위 그림과 같이 미디움 타이어는 매 랩 당 80초의 랩타임을 보여주고, 소프트 타이어는 매 랩 당 75초의 랩타임을 보여준다.
여기에 피트스탑(Pitstop)에 소요되는 시간은 25초라고 가정해보자.
단순하게 설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레이스 룰은 일단은 생략하고 (예를 들어, "경기당 최소 2가지 종류의 타이어를 사용해야 한다" 등) 미디움일 때 원-스탑, 소프트일 때 투-스탑 전략을 가져간다고 하면 그래프틑 다음과 같이 그려질 것이다.
첫 번째 전략은 속도가 적당한 미디움 타이어를 쓰는 대신, 미디움 타이어의 수명이 기니 피트스탑을 한 번만 하는 원-스탑 전략이다. 두 번째 전략은 속도가 빠른 소프트 타이어를 쓰는 대신 소프트 타이어의 수명이 짧으니 피트스탑을 두 번하는 투-스탑 전략이다. 어떤 전략이 더 좋을까? 계산은 단순하다. 모든 시간을 더하면 된다.
미디움의 경우, 매 랩 당 80초에 피트스탑 25초이니, 단순 계산으로 (80초 * 10랩) + 25초 = 총 825초가 소요된다.
소프트의 경우 매 랩 당 75초에 피트스탑 25초이니, 단순 계산으로 (75초 * 10랩) + (25초 * 2번) = 총 800초가 소요된다.
따라서 비록 피트스탑을 2번 했으나,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하는 전략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 여기까지 이해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요소2 :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 (Tyre Wear Profile)
다음으로 고려해야할 것은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Tyre Wear Profile)이다. 한국말로 풀이하면 '타이어 마모 정도를 나타내는 개요(?)' 정도일까?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Tyre Wear Profile)이란 매 랩마다 타이어의 그립 레벨, 즉 지면과의 접지력의 정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나타내는 개요이다. 타이어의 성능이 왜 점차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에서는 설명하지 않겠지만, 타이어는 타이어를 교체한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장 빠르고, 랩을 돌면 돌수록 타이어가 마모되어 점점 느려진다.
실제로 타이어는 타이어의 컴파운드(compound), 트랙의 상태, 트랙의 온도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아 마모되지만, 간단하게 그래프로 나타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위 그래프를 보면 랩 초반에는 랩타임이 빠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랩타임이 늘어난다.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타이어의 마모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래프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가파른 절벽(cliff)이다. 이런 가파른 절벽은 과한 타이어 성능 저하에 의해 나타난다. 드라이버들은 이러한 타이어의 급격한 성능 저하를 맞닥뜨리기 직전에 피트인(pit-in)을 해야 한다.
어찌됐든 간에 이런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을 적용하면앞선 그래프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기존과 대비해서 타이어 성능 저하로 인한 랩타임 증가는 아래와 같다.
경기 전략 측면에서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요소3 : 타이어 컴파운드 (Tyre Compound)
실제 F1은 매 경기마다 세 종류의 타이어 중 적어도 두 종류 이상의 타이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이 단순한 그림으로 나타낼 수는 없다.
이러한 타이어 컴파운드의 조합으로 경기를 구성해야하고, 각 컴파운드별 레이스 단위를 스틴트(stint)라고 칭한다. 어떠한 스틴트로 경기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스틴트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랩수를 10랩에서 20랩으로 늘려보겠다.
첫째로 보수적인 전략을 취하는 경우의 스틴트를 살펴보자. 초반에는 소프트 타이어를 사용한다. 소프트 타이어는 초반에 그립이 더 좋기 때문에 초반 포지션 점유에 유리하다. 소프트 타이어는 6랩 이후부터 가파른 절벽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면, 6랩 째에 드라이버는 피트인을 할 것이다. 피트인을 한 후 하드 타이어로 교체하고, 나머지 랩을 이 하드 타이어로 주행한다고 해보자. 이때 하드 타이어는 다소 랩타임이 느리긴 하지만, 남은 레이스를 마치기에 충분하다고 하자.
둘째로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동일하게 소프트 타이어로 출발한다. 다음 스틴트는 하드 타이어 대신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한다. 미디엄 타이어는 하드 타이어보다는 빠르지만 남은 레이스를 소화하기에 충분치 않다. 따라서 다시 한번 피트인을 해야 하고 남은 스틴트는 다시 소프트 타이어를 장착하고 레이스를 마친다고 해보자.
둘 중 어느 전략이 더 좋을까?
첫번째 전략은 두번째 전략 대비 피트스탑 시간 25초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레이스의 70%를 랩타임이 느린 하드 타이어로 달려야 한다.
반면 두번째 전략은 레이스의 70%를 첫번째 전략 대비 빠른 타이어로 임할 수 있다. 하지만 피트스탑 시간 25초가 더 걸리게 된다.
눈대중으로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위 사진에서와 같이 총 시간을 계산해보면 첫번째 전략이 857초로 두번째 전략의 864초보다 더 빠르다. 두번째 공격적인 전략이 더 느리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두번째와 같은 공격적인 전략은 언제 쓸까? 굳이 느린데?
공격적인 전략을 취하는 경우
첫째로 드라이버가 타이어 관리에 굉장히 능숙한 드라이버라면? 타이어 성능 저하로 인한 랩 타임 증가가 위 그래프보다는 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세이프티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전 포스팅에서 다뤘듯이,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피트스탑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자 그럼 이제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에 대해 살펴봤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요소4 : 연료 중량 (Fuel Weight)
다음 단계는 연료 중량(Fuel Weight)이다. 과거 F1 경기와는 다르게 현대 F1은 재급유(refueliing)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레이스 시작 때 레이스를 돌기에 충분한 연료를 채워 넣고, 레이스 종료까지 그 연료로 달리게 된다. 이때 랩수에 따른 연료 무게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위 그래프와 같이 시간이 지날 수록 연료의 양은 줄어든다. 이는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게 될까?
1차적으로 연료량이 줄어든 덕에 차량의 무게가 감소하게 된다. 무게가 감소한다는 것은 같은 속도를 내기 위해 더 적은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같은 에너지로 차량에 더 큰 에너지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료량이 감소함에 따라 랩타임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더불어 타이어 마모도 관리가 더 쉬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타이어에 실리는 하중이 더 줄어들고 그만큼 타이어에 무리가 덜 가기 때문이다. 첫 스틴트의 소프트 타이어는 수명이 10랩정도 되지만, 마지막 스틴트의 소프트 타이어 수명은 13랩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간단한 모델에서는 연료무게 감소에 따른 랩타임의 감소가 아래와 같이 된다고 해보자.
연료가 많으면 좋나? 적으면 좋나?
차량은 규정 상 연료량을 최고 105kg까지만 사용할 수 있으나, 전체 레이스로 봤을 때 최대 성능을 내고 싶다면 연료 200kg를 넣으면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연료 중량은 레이싱 속도에 굉장히 해로운 요소이기 때문에 전략을 짤 때 연료를 너무 많이 채우고 싶지 않아할 수도 있다.
정리하면 연료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되는 것이고, 결국 전체 레이스동안 연료 관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실제로 경기 중에 연료모드 변경에 따라 같은 소프트 타이어를 끼더라도 랩타임이 달라질 수 있다. 연료를 더 많이 쓰는 모드에서는 랩타임이 훨씬 줄어들고, 연료를 아끼는 마치 에코모드와 같은 연료 모드에서는 랩타임이 좀 더 늘어난다.
실제 팀의 전략담당자들은 트랙의 형태느 상황에 맞게 연료를 잘 조절하게끔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기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다음 요소를 보자.
요소5: 세이프티 카 (Safety Car)
경기 중에 세이프티카가 등장할 수 있다. 세이프티카 상황에서는 F1 규정상 일정 속도 이상을 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엔진은 연료를 덜 쓸 것이고, 이에 따라 타이어는 덜 마모된다. 이로 인해 세이프티카 상황이 더 길면 길수록, 차량은 남은 레이스를 더 빡세게(?) 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프트 타이어를 기존 예상했던 수명보다 더 길게 쓸 수 있고, 과거 엔진 모드를 바꿀 수 있던 때에는 더 고출력 엔진 모드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앞서 설명한 상황의 12번째 랩에서 세이프티카 상황이 발동했고, 이 세이프티카 상황은 3랩동안 유지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되면 각 팀이 8바퀴를 더 돌 타이어 또는 연료의 상황을 예상했으나, 남은 랩수는 5랩이 되었다. 뭔가 전략의 변경이 필요해보인다.
보통 이러한 상황에서는 팀 대부분은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프리 피트스탑을 수행한다. 세이프티카가 발동하자마자 피트스탑을 하고, 이때 남은 랩을 더 빨리 돌기 위해 소프트 타이어를 장착한다.
이러한 세이프티 카 상황도 전략에 잘 녹여야 한다.
예를 들어 모나코나 싱가포르와 같은 트랙은 세이프티카가 발동될 확률이 굉장히 높은 트랙들 중 하나이다. 따라서 각 팀은 해당 트랙에서는 세이프티카가 발동될 확률이 있으니, 전략을 좀 유동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세이프티카 상황을 예측 또는 예견해서 언제든 전략을 변경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짜잘하고 중요한 요소들
나머지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타 요소들을 살펴보자.
날씨 (Weather)
기온이라든지 습도라든지 더 심한 경우 비가 온다든지 하는 날씨 변화는 타이어 컴파운드 선택의 중요성을 더 강조시킨다. 만약 경기 중간에 비가올 것이라고 예측되는 경우, 기존의 전략을 다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미디엄을 끼고 달리다가 비가 온다면? 인터미디어트로 바꿔야한다. 근데 비가 그칠 것 같다면?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미디엄으로 쭉 달리는게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타이밍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말 전략의 노하우와 충분한 경험이 토대로 되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wkyhWfloqFI&ab_channel=FORMULA1
참고로 2021년 러시아 그랑프리에서 1등으로 달리고 있단 맥라렌의 랜도 노리스는 경기 종료를 2랩 남겨둔 시점에서 웻 컨디션(wet condition)에도 불구하고 드라이 타이어를 장착하고 경기를 마무리 하려다가 큰 낭패를 봤다. 피트인하여 일찍이 웻 타이어로 변경한 팀들에게는 큰 보상이 뒤따랐었다. 이처럼 날씨에 따른 전략도 굉장히 중요하다.
영상에서 보면 알겠지만 드라이 타이어를 고집했던 노리스도 큰 실수를 했지만, 무전을 날리는 맥라렌의 전략 담당자도 섣불리 웻 타이어를 강요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또한 팀의 큰 전략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이 '날씨'라는 영역은 어떻게 보면 운의 영역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트랙 (Track)
추월이 어려운 트랙에서는 포지션 우위를 차지하는게 중요하다. 따라서 공격적인 전략보다는 기본적인 안전한 전략을 가져가는게 유리할 수도 있다. 굳이 피트스탑을 해서 포지션을 잃는 것 보다, 랩타임이 좀 더 늘어나더라도 디펜딩을 적절히 해서 경기를 주도해 나가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트래픽 (Traffic)
상황에 따라 트랙의 트래픽이 심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추월은 가능하지만 오히려 무리를 해서 추월을 한 후로 추월을 위해 닳은 타이어로 인해 성능저하가 더 심하게 나타난다면? 생각보다 추월이 잘 되지 않아, 오히려 랩타임을 계속 까먹는다면?
오히려 피트스탑을 적절히 하여, 피트아웃했을 때 트래픽이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더욱 더 안정적인 레이스를 가져갈 수도 있다.
팀 내부 사정
각 팀별 내부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을 가져갈 수도 있다.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 2명이 나란히 달리고 있을 때 굳이 경쟁을 하게 하여 포인트를 하나도 따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 이때 적당히 경쟁을 하지 말라고 오더를 내릴 수도 있다. 굳이 컨스트럭터 챔피언십에 위협을 가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gPkIfNtro7I&t=481s&ab_channel=FORMULA1
위 영상 끝부분을 보면 2위로 달리고 있던 랜도 노리스에게 1위로 달리고 있는 팀 메이트 리카도를 추월 시도 하지 말고 그 포지션을 유지하라고 팀에서 오더가 내려온다.
또는 한 드라이버의 개인 포인트를 위해 세컨 드라이버에게 양보를 요청할 때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7eCuPUjfsc&t=32s&ab_channel=F1XHILARATE
발테리 보타스가 메르세데스에 세컨드 드라이버로 있던 시절, 루이스 해밀턴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는 오더나 또는 무리하게 추월시도를 하지 말라는 팀 무전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팀 상황에 맞게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많다.
마치며
이번 포스팅에서는 레이스 전략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랩수에 따른 랩타임 변화, 피트스탑 시간부터 시작해서 타이어 웨어 프로파일, 연료 중량, 세이프티카 상황 및 기타 여러 요소들에 대해 간단히 다뤘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욱 더 복잡할 것이다. (사진 : 복잡한 모습의 피트 전략가들 화면)
실제 경기를 챙겨보다 보면 어떤 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운전 실력과 차량의 성능만큼이나 팀의 전략 담당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아무리 차가 좋고 드라이버가 운전을 잘해도, 엉뚱한 상황에 피트에 들어가거나, 엉뚱한 타이어를 껴버리면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조금 주제를 다르게 해서 공기역학과 관련된 '높은 고도에서의 경주'를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