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중국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시절 다니엘 리카르도(Daniel Ricciardo)는 어마 무시한 추월 쇼를 보여줬다. 경기 마지막에 5순위를 끌어올리면서 당당히 2018년도 중국 그랑프리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추월은 F1에서 '꽃'이다. F1 뿐만 아니라 순위를 가리는 모든 모터스포츠에서도 추월은 경기의 재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F1 경기의 꽃, 추월(overtake)에 대해 다루어보고자 한다.
들어가며
F1 경기를 보면 추월은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차량을 직접 모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냥 처음 경기를 보면 '와 추월했다! 대단하네!' 정도에 그치지 '와 저 어려운 걸 해내다니, 실로 대단하구먼!'이라고 반응하지는 않았다. 나 또한 F1을 본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포스팅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추월이 어려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렵겠거니 했지만 많이 어려운 줄은 몰랐다.)
일단 본질적으로 추월이란 굉장히 어려운 것을 기억하고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F1 규정, 추월을 어렵게 한다?
현 F1 규정 상 어떤 차량을 따라가려고 하거나 그 차를 결국에 추월해내는 것이 어렵다. 어떠한 규정 때문에 어려운지는 다루지 않고 공학적인 내용만 다루려고 한다.
추월의 3단계
1. 움직임을 준비하라 (Set up your move)
2. 아웃 브레이킹 (Out Braking)
3. 포지셔닝 (Positioning)
. 드라이버의 본능
추월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해봤다. 움직임을 준비한 후, 아웃 브레이킹이라는 동작을 하고 나서, 적당한 위치로 포지셔닝하는 것이 추월의 과정이다. 아직 저 세 단계를 보고 감이 안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나씩 살펴보자!
1. 움직임을 준비하라 (Set up your move)
먼저 움직임(Moves)을 셋업해야 한다. 추월은 드라이버가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드물게 어느 순간 드라이버가 갑자기 추월을 시도할 수 있겠다 판단해서 추월에 성공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드라이버들은 추월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섣불리 추월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몇 코너 전쯤이나 심지어는 몇 랩 전부터 '미리' 자신의 움직임을 준비한다.
* 아래부터 추월을 시도하는 차량을 공격차량, 추월을 막으려는 차량을 방어차량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움직임을 미리 준비한다는 걸까? 추월을 시도하려는 드라이버는 내가 추월하고자 하는 적의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적의 약점들은 아래와 같다.
- 혹시 방어차량이 1번 코너에서 브레이크를 일찍 밟고 있나? 브레이크 성능 파악
- 혹시 8번 코너에서 트랙션을 잡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있나? 타이어 트랙션 상태 파악
- 혹시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파워유닛의 출력을 낮추고 있는 상태인가? 배터리 충전(harvest) 여부 파악
- 타이어 상태가 좋지 않은가? 타이어 상태 파악
- 나보다 지금 온도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상태인가? 브레이크 및 타이어 온도 파악
위와 같이 경기 내내 방어차량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그들의 약점을 파악한 후 언제 추월을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F1 드라이버다. 굉장히 스마트하다...!
2. 아웃브레이킹 (Outbraking)
보통 우리가 보는 추월은 아주 긴 직선 구간 또는 직선 구간 직후 마주하는 코너에서 일어난다. 직선 구간이 만약 DRS 구간이라면 더더욱 추월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다고 모든 추월이 이런 직선 구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복잡한 코너의 특성을 기회로 삼아 추월을 시도하기도 한다.
코너의 특성을 기회로 추월을 시도하는 것을 아웃브레이킹(Outbraking)이라고 한다. 아웃브레이킹을 통해 더 나은 포지션을 점유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웃브레이킹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브레이킹 포인트 & 턴인 포인트
먼저 코너를 공략하는 법을 살펴보자. 코너에 진입하기 전, 코너마다 브레이크를 잡는 아주 이상적인 지점(Ideal Point)이 있다. 이를 이상적인 브레이킹 포인트(Braking Point)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이 코너를 최고 속도로 돌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이상적인 코너 라인을 그리면서 코너링을 할 수 있다. 이때 코너를 돌기 시작하는 지점을 턴인 포인트(Turn-in Point)라고 한다.
● 브레이킹 포인트 (Braking Point)
코너를 최고 속도로 돌 수 있게 하는
이상적인 브레이킹 지점
● 턴인 포인트(Turn-in Point)
코너를 돌기 시작하는 지점
브레이킹 포인트, 미루냐 당기느냐
이때 이상적인 브레이킹 포인트는 브레이크 상태와 타이어의 상태 그리고 이들의 온도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냥 평범한 드라이버라면 이들에 대해서 그냥 인지하고 있는 정도겠지만, 최고의 드라이버는 브레이크와 타이어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한다. 브레이크와 타이어의 상태에 따라 드라이버가 얼마만큼 일찍 브레이크를 밟을지, 그리고 브레이킹 구간을 지나면서 얼마만큼 세게 브레이크를 밟을지 판단하는 데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브레이크가 그리 뜨겁지 않은 따뜻한 정도이고 거기에다가 갈아 끼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타이어를 꼈다면? 브레이크를 좀 더 늦게 밟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브레이킹 포인트를 더 미룰 수 있다. 브레이크는 뜨겁지 않고 따뜻하기 때문에 열에너지를 많이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고, 타이어는 마모가 되지 않은 새 타이어이기 때문에 강한 브레이킹도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브레이크가 뜨겁고 타이어는 많이 마모된 타이어라면 브레이킹 포인트는 더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 브레이크 따뜻 & 타이어 싱싱
브레이킹 포인트를 더 뒤로 미룰 수 있다.
● 브레이크 과열 & 타이어 마모
브레이킹 포인트를 앞으로 당겨야 한다.
드라이버마다 다른 브레이킹/턴인 포인트
허나 이렇게 브레이킹 포인트를 미룬다거나 당기는 것은 드라이버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
만약 조금 주행을 안전하게 가져가고 싶다면, 드라이버는 브레이크를 좀 더 일찍 밟을 것이다. 즉 브레이킹 포인트를 앞당긴다. 브레이크를 늦게 밟으면 턴인 포인트까지의 브레이킹 구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에 좀 더 여유롭게 코너를 진입할 수 있기에 코너링을 위한 최적의 속도에 잘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주행을 좀 무모하게 한다 치면, 브레이킹 포인트를 뒤로 더 미룰 수 있다. 브레이크를 늦게 밟는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턴인 포인트까지의 구간은 조금 짧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자칫하다간 속도 조절에 실패해 턴인 포인트를 지나쳐 넓게 코너를 돌게 될 염려가 있다. 이걸 보상하기 위해 드라이버는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밟거나, 브레이크가 잡힌 상태 혹은 이로 인한 휠락 상태에서 코너를 돌아들어가게 된다. 차량을 컨트롤하지 못한 채로 직선 구간에서 앞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이러한 드라이버마다 다른 브레이킹 및 턴인 포인트는 각각 이상적인 최적의 브레이킹 포인트 및 턴인 포인트 앞뒤로 굉장히 애매한 구간 중 한 지점이다.
만약 드라이버가 미숙해서 안전함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면, 브레이킹 포인트가 앞당겨지므로 브레이킹 구간이 길어지는 것뿐 아니라, 미숙함으로 인해 불확실한 브레이킹 지점을 가질 것이다.
만약 좀 더 브레이킹에 자신이 있으며 심지어 브레이킹을 잘하는 드라이버라면 브레이킹 구간을 짧게 가져간다. 하지만 턴인 지점을 지나칠 경우를 대비해 턴인 포인트 마진을 더 둘 것이다.
정밀한 브레이킹의 중요성
아주 정밀하고 미세한 브레이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보자.
위 그림처럼 직선 구간 끝에 급격한 코너가 있다고 해보자. 이러한 직선-코너는 틸케드롬 시대에서 종종 보이는 컨셉이니 집중해서 읽어보자!
만약 이상적인 브레이킹 포인트를 320km/h의 속도로 지나간다고 해보자. 이는 초 당 89m 정도이기 때문에, 만약 브레이크를 0.5초 정도 늦게 밟는다면 브레이킹 포인트를 44.5m만큼 지나게 된다. 만약 0.1초 늦게 밟는다면 8.9m 정도 지나게 될 것이다. 8.9m면 2대의 F1 차량 정도 된다!
반대로 0.1초 일찍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되면 브레이킹 포인트보다 8.9m 일찍 밟게 될 것이고, 이는 동시에 턴인 지점보다 8.9m 일찍 턴인 속도에 도달한다는 의미가 된다. 8.9m가 F1 차량 2대인 것을 감안하면 0.1초는 굉장한 시간 손실이다. 굳이 8.9m나 일찍 턴인 속도에 도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웃브레이킹이 뭔데?
아웃브레이킹이란
이상적인 브레이킹 포인트와 턴인 포인트에
가깝게 브레이킹을 하는 것
결국 ‘아웃브레이킹 한다’의 의미는 이상적인 브레이킹 포인트와 턴인 포인트에 가깝게 브레이킹을 한다는 의미이다. 만약 내 라이벌보다 아웃브레이킹을 잘한다면 뒤따라가는 차의 옆에 바짝 붙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차를 옆에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는 추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틸케드롬(Tilkedome)이란?
독일의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엔지니어이자, 서킷 디자이너인 헤르만 틸케(Hermann Tilke)가 설계한 서킷을 의미한다. 헤르만 틸케는 수많은 F1 서킷을 설계했는데, 틸케가 설계한 서킷은 섹터별로 확연히 구분된다. 예로 들면, 고속 코너로 구성된 섹터 1, 헤어핀-직선-저속코너-직선으로 이루어진 섹터 2, 중저속 코너가 연속으로 붙어 있는 섹터 3가 있다. 구조의 서킷 특성상 차량의 전반적인 성능을 모두 테스트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서킷에서는 굉장히 지루하게 경기가 진행되므로, 이를 비판하는 의미로 틸케드롬(Tilkedrome)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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