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F1 중계를 보다보면 슬립스트림(Slipstream)과 더티에어(Dirty Air)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된다.
'뒷차량이 슬립스트림을 타고 굉장한 속도로 앞차와 간격을 좁히고 있네요!'
'뒷차가 앞차로 인한 더티에어로 인해 추월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뒷차가 앞차에 붙으면 슬립스트림으로 속력이 빨라지기도 하고, 더티에어로 인해 속력이 느려지기도 한다. 이때 궁금증이 생긴다. 뒷차가 슬립스트림을 탈 지, 더티에어를 맞을 지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거리가 가까우면 슬립스트림이고 거리가 멀면 더티에어인가?
이번 포스팅에서는 슬립스트림(Slipstream)과 더티에어(Dirty Air)의 애매함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보려고 한다. 렛츠-고.
[목차]
- 공기는 물이다?!
- 항력(Drag) : 저항하는 힘
항력을 느껴보자
항력(Drag)이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항력
- 슬립스트림 (Slipstream)
슬립스트림이란?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슬립스트림
- 다운포스(Downforce) :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
- 더티 에어 (Dirty Air)
더티 에어란?
더티 에어로 인한 속도 저하
- 상충되는 관계 : 항력과 다운포스
- 슬립스트림과 더티 에어의 공존
공기는 물이다?!
우리 주위에는 물리적으로 공기가 둘러싸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평소에는 인지하고 있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평소 생활할 때에는 이걸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거리를 거닐면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는 이상 얼굴에 아무 느낌도 없다. 하지만 50km/h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 안에서 차 창문을 열어 얼굴을 내밀어 보면 아주 미칠 것처럼 공기가 얼굴을 때려버린다. 역시 공기는 우리 주변에 있던 것이 맞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공기는 확실히 ‘물질’이다. 얼굴을 때리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은 공기가 질량을 가진다는 증거이다. 이런 질량이 있는 물체는 당연히 압력도 있으며, 부력도 존재한다. 이러한 성질은 차량이 빠르게 갈수록 더 심해진다. 차량의 속도가 100km/h되는 상황에서 창문을 여는 것을 생각해보면 앞선 50km/h 때보다 얼굴에 더 많은 힘이 가해진다.
다른 예로 배의 노를 저어보자. 느리게 저으면 쉽지만 빠르게 저을수록 힘이 많이 든다. 물 분자가 미는 힘에 저항하는 것이다.
공기도 마찬가지다. 공기는 기체이기는 하지만 결국 여러 분자로 이루어져있다. 공기가 기체인 이유는 액체보다 분자 간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기체일 뿐이다. 하지만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분자간의 거리가 가까워질 것이고 이는 앞서 물로 예를 들었던 액체와 비슷한 논리로 돌아갈 것이다.
F1 차는 굉장히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한 속도로 달리는 F1 차량은 우리가 마치 수영장 물속에서 수영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하면 F1 차량이 공기를 대하는 것과 우리가 물을 대하는 것과 그 맥락이 같다는 것이다.
항력(Drag) : 저항하는 힘
항력을 느껴보자
우리는 지금 한강 위에서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땟목이 있다.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땟목의 왼편에 노를 꽂으면, 물과 노 사이에 저항이 생겨 왼쪽 편이 마치 브레이킹이 걸리듯 느려질 것이다. 이로 인해 땟목은 왼쪽으로 꺾일 것이다.
F1의 세계도 동일하다. 시속 300km의 속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F1 차량에 탑승한 채로, 차량의 왼쪽 편에 노를 가져다 대보자. 그럼 땟목의 예시와 동일하게 차량은 왼쪽으로 꺾이게 될 것이다.
항력(Drag)이란?
앞쪽으로 저항하는 유체 공기(Fluid Air)를 '항력(Drag)'이라고 한다. 항력은 차량이 가속을 통해 앞으로 가려고 할 때 이를 방해하려는 성질을 갖는다.
이를 쉽게 이해하려면 낙하산을 생각하면 된다. 공중에서 우리가 떨어질 때 낙하산이 없다면 우리 몸은 중력에 의해 엄청나게 가속될 것이다. 하지만 낙하산이 항력(Drag)을 발생시켜 가속이 저지되고, 이 때문에 느린 속도로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다.
이러한 항력은 차량의 크기와 모양과 연관이 있고, 공기의 밀도와도 연관이 있다. 만약 F1 차량이 엄청 큰 정육면체의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지금의 뾰족뾰족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양을 가진 F1 차량에 비해 엄청난 항력을 받게 될 것이다.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항력
차량의 모양과 크기가 어떻든, 공기의 밀도가 어떻든 간에 항력이라는 것은 그 성질 상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냥 속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제곱에 비례한다.
차량의 속도가 시속 50km일 때 항력이 F라고 해보자. 만약 차량의 속도가 2배인 시속 100km일 때 항력은 그 2배의 제곱인 4F가 된다. 만약 차량의 속도가 3배인 시속 150km일 때 항력은 그 3배의 제곱인 9F가 된다.
F1 차량의 속도는 최대 시속 350km이다. 그렇다면 항력은? 7배의 제곱인 49F가 된다. 이게 어떤 말이냐면, 우리가 그냥 F1 차량이 아닌 일반 차량이 시속 50km로 달릴 때 밖에 손을 한번 내밀어보자. 차량이 그리 빠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손에 힘이 꽤나 느껴진다. 이 힘의 무려 49배가 차량에 가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시 F1 차량을 보자. F1 차량이 시속 350km로 달릴 때 차량은 엄청난 항력을 이겨내야 한다. 차량의 리어 윙만 놓고 본다면 리어 윙에는 엄청난 힘이 가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참고 | DRS (Drag Reduction System)
(사진)
우리가 DRS의 풀 네임이 Drag Reduction System(항력 감소 시스템)임을 보면 좀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리어 윙을 열어버리면 마치 손바닥을 옆으로 세우는 것과 동일하게 공기의 저항, 즉 항력을 덜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DRS다.
슬립스트림 (Slipstream)
항력이라는 녀석은 슬립스트림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속의 차량은 엄청난 항력을 받을텐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항력을 줄이면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까?
슬립스트림이란?
공기는 물과 비슷하다고 했으니, 한번 바다 위의 배가 지나갈 때를 생각해보자. 배가 지나가면 배는 수면 위에 항적(wake)을 만든다.
동일하게 F1 차량도 항적(wake)을 만든다. 배의 항적과 유사하게 고속의 F1 차량은 차량 뒷편에 엄청나게 큰 저밀도의 공기 구멍(공기 주머니)을 생성한다. 이 공기 구멍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차량이 맞서 싸워야할 공기가 그만큼 줄어들고, 이는 항력의 감소를 가져온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앞 차의 뒷 꽁무늬를 쫓아가는 차량은 공기를 다 맞고 있는 앞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기를 덜 맞기 때문에 가속에 유리하다. 따라서 뒷차가 앞차보다 차량의 최고 속도에 더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슬립스트림(Slipstream)이다.
이는 직선 구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준다. 보통 코너를 빠져 나온 뒤 직선 구간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 직선 구간에서 가속을 빠르게 하여 최고 속도에 도달한다. 이렇게 빠르게 최고 속도에 도달한다면, 직선 구간이 끝나고 난 후 맞닥뜨리는 코너 진입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는 곧 추월을 의미한다.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슬립스트림
레이스나 퀄리파잉 때 차량들이 앞차의 바로 뒷 꽁무늬를 쫓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FIbPFNR5WI&ab_channel=FORMULA1
이탈리아 몬짜 서킷(Monza Circuit)을 보면 마지막 파라볼리카(Parabolica) 코너 이후 엄청나게 긴 직선 구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엄청 긴 직선구간에서 드라이버들은 첫번째 코너에 빠르게 진입하기 위해 속도를 빠르게 올리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슬립스트림을 타려고 악착같이 노력한다. 몬짜 그랑프리의 퀄리파잉을 보면 슬립스트림에 집착하는(?) 드라이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2021 러시아 그랑프리 레이스 첫 스타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소치 서킷(Sochi Circuit)은 첫 스타트 그리드부터 두번째 코너까지 꽤 긴 직선 구간을 가지고 있다.
스타팅 포지션은 다음과 같았다. 첫번째 그리드는 란도 노리스, 두번째는 카를로스 사인츠, 세번째는 조지 러셀이었다. 2위로 출발하는 사인츠는 1위로 출발하는 노리스의 블락킹을 당했으며 동시에 3위로 출발한 러셀의 압박을 받았다. 이는 운 좋게도 사인츠가 노리스 뒤에 바짝 붙어 주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는 곧 슬립스트림을 탈 수 있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인츠가 2번 코너에 일찍 진입할 수 있도록 해줬고, 이를 통해 노리스를 추월할 수 있었다.
다운포스(Downforce) :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힘
이전 포스팅(공기역학에 대한 이해) 필독-!
어떤 물체가 바닥에 있다고 해보자. 위에서 물체를 누르는 힘과 이 물체의 마찰력(바닥에서 미끄러지려는 것에 저항하려는 힘)은 서로 선형적(linear)이다. 다시 말해 1만큼의 힘으로 누르면 1만큼의 마찰력이 생기고, 10만큼의 힘으로 누르면 10만큼의 마찰력이 생긴다.
자 이제 F1 차량의 코너링을 보자. F1 차량이 코너를 돌 때 관성에 의해 F1 차량은 가던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이 힘을 차량을 돌리는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차량의 무게가 거의 750kg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겨내야 할 운동량이 굉장히 크다. 이러한 운동량(momentum)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에겐 다운포스(downforce)라는 녀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운포스는 공기역학과 직결되는 요소다. 단순히 차량의 무게만으로는 충분한 다운포스를 낼 수 없다. 충분한 다운포스를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무게가 늘었을 때 느려지는 속력은 누가 위로해주나!
차량이 앞으로 주행할 때에는 크게 2가지 힘이 작용된다. 첫번째는 차량을 뒤로 끄는 항력(Drag), 두번째는 차량을 위에서 누르는 다운포스(Downforce)이다. 다운포스는 간략하게 설명하면 차량이 공기를 위로 누르는 힘에 대한 반작용이다.
따라서 차량이 공기를 위해 더 세게 밀어낼수록 다운포스는 더 강해진다. (자세한 것은 이전 포스팅 참고)
이렇게 다운포스를 많이 내려면 밀도가 높은 공기가 오히려 더 좋다. 더 많은 공기를 밀어내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고, 더 큰 힘으로 공기를 밀어내기에 더 큰 다운포스가 생성될 것이니까 말이다.
더티 에어 (Dirty Air)
앞차의 항적으로 보는 손해
우리는 슬립스트림을 살펴보면서 고속의 차량이 항적(wake)을 만들 때 발생시키는 공기 구멍을 통해 드라이버들이 이점을 보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차량이 남긴 항적(wake)은 단순히 뒷차량에게 이점만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차량 뒤편으로 공기 주머니를 만들기도 하지만 굉장히 지저분한 공기도 발생시킨다. F1 차량은 크고 작은 와류(Vortices)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되어있다. 프론트 윙(Front Wing)을 포함한 여러 파츠들은 와류를 생성해서 차량의 바퀴로부터 나오는 굉장히 지저분한 공기를 가두는 벽의 역할을 한다. 이는 뒷 차량에게 불규칙적이면서 예측불가능하고 더러운 공기를 맞게 만드는데, 이러한 공기를 더티에어(Dirty Air), 말 그대로 더러운 공기라고 한다.
이러한 더티 에어로 인해 따라 붙는 뒷 차량의 다운포스가 현저히 줄어들게 돼서, 코너링 시 차량의 속도가 크게 저하된다. 왜 속도가 저하될까?
더티 에어로 인한 속도 저하
차량이 코너에 진입할 때 앞차를 따라간다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공기의 밀도가 충분하고 깔끔하고 일정해야 앞서 말한 다운포스가 충분히 생성되어 차량의 운동량을 이겨낼 수가 있다.
그런데 앞차가 발생시킨 지저분한 공기에 의해 충분한 다운포스가 발생되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코너를 돌 때 속력을 줄일 수 밖에 없게 된다. 빠른 속도는 추월과 직결되는데, 속도가 느려져버리게 되면 앞차와의 간격이 벌어져 드라이버가 추월의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이는 땟목의 예시로 좀 더 이해가 쉬울 수 있다. 땟목의 노를 저으면 물과의 저항으로 떗목은 앞으로 나아간다. 근데 만약 강물의 깊이가 떗목을 저을 만큼은 되기는 하지만 그 깊이가 낮다면? 또는 강물에 거품 같은 기포가 많아서 밀어낼 물이 충분치 않거나 물이 너무 불규칙적이라면? 이것이 바로 더티 에어다.
상충되는 관계 : 항력과 다운포스
어떻게 슬립스트림과 더티에어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코너링 속도와 직선구간 속도의 균형으로 나타난다. 코너 구간 속도와 직선 구간 속도는 서로 상충된다. 다시 말해, 하나를 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직선 구간의 빠른 속도를 원한다면, 극단적으로 리어 윙(Rear Wing)을 없애버리면 된다. 차량 뒤에 굳이 항력을 발생시키는 낙하산을 달고 달릴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리어 윙을 없애면 항력이 크게 줄어들어 가속도 굉장히 빨라지고 최고 속도 또한 증가할 것이다.
허나 이렇게 되면 문제는 코너 구간 속도다. 다운포스를 발생시키는 리어 윙을 없애버리면 다운포스가 급격히 줄어들어 빠른 속도로 코너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약 리어 윙의 각도를 늘리면 어떻게 될까? 리어 윙의 각도를 크게 하면 더 많은 다운포스가 생성되어 이는 코너링에 큰 이점을 가져다준다.
허나 이렇게 되면 직선 구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리어 윙에 의한 항력이 강해져 가속도 힘들고 최고 속도 또한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결국 차량이 주행할 때 발생하는 항력(Drag)과 다운포스(Downforce)은 서로 상충된다. 항력이 낮아지면 직선구간에서 빠르지만, 다운포스가 높아져 코너링 속도는 느려진다. 항력이 높아지면 코너링 속도는 빠르지만, 직선 구간에서의 속도가 느려진다.
슬립스트림과 더티 에어의 공존
슬립스트림은 항력과 관련된다. 더티 에어는 다운포스와 관련된다. 항력과 더티에어는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슬립스트림과 더티에어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직선 구간에서는 더티 에어는 속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직선 구간에서 더티 에어를 맞더라도, 더티 에어는 앞차가 맞는 공기보다 밀도가 더 낮기 때문에 오히려 뒷 차에게 이득을 줄 수도 있다.
코너 구간에서는 슬립스트림이 오히려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공기 구멍에서는 공기 밀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오히려 코너링에는 좋지 않다.
마치며
모든 모터스포츠의 꽃은 추월이다. 하지만 더티에어로 인해 추월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많은 드라이버들이 현 F1 차량에 대해 불평 불만을 늘어 놓고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2022 F1 차량 디자인 및 규정의 변화가 대부분 이러한 더티 에어 관련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를 통해 더 추월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