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F1 차량에서 무게 배분(Weight Distribution)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포스팅에서 잠깐 서스펜션(Suspension)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위 포스팅에서는 코너링할 때 차량이 양 옆으로 무게가 쏠려 안쪽 바퀴가 들리는 롤(Roll) 현상을 언급하면서 잠시 서스펜션(Suspension)에 대해 언급 정도만 스리슬쩍 하고 넘어갔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서스펜션(Suspension)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동작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포스팅은 아마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질 예정이다. 첫번째는 '서스펜션의 기초(Fundamentals of Suspension)'로 어떻게 서스펜션이 존재의 이유에 맞게 동작하고, 어떻게 F1 차량에 디자인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두번째는 서스펜션과 관련된 부품들, 이를테면 댐퍼(Damper), 안티-롤(Anti-Roll) 시스템 등을 다룰 예정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서스펜션의 기초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노면과 맞닿는 유일한 녀석들 : 타이어
가만 생각해보면 F1 차량의 부품 중 유일하게 트랙 바닥과 맞닿는 부분은 네 개의 바퀴 뿐이다. 노면과 닿는 부분이 오로지 바퀴이기 때문에 우리는 차량 설계 관점에서 2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타이어 관련 고려해야할 사항 2가지]
1. 노면에 닿는 타이어의 접지 면적
2. 무게 배분(Weight Distribution)
#1 타이어 접지 면적
첫번째는 노면에 닿는 타이어의 접지 면적이다.
모든 조향(Steering), 브레이킹, 공기역학, 출력 등과 같은 차량 동작을 위한 입력 값(input)들이 있다. 이러한 입력 값들은 노면과 닿아있는 타이어를 통해 어떤 특정한 형태의 힘으로 변형시키는데, 에너지가 어떻게 변형되어 타이어를 통해 노면으로 전달 되는지에 따라 차량의 동작들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조향 장치(스티어링 휠)를 움직여 차량의 동력을 노면과 닿아있는 앞바퀴로 전달해 차량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다른 예로, 우리는 가속 페달을 밟아 차량의 에너지를 뒷 바퀴로 전달해 노면과의 마찰력으로 차량을 가속할 수 있다. 브레이킹 시스템을 통해 바퀴와 트랙 표면의 상호작용을 이용해 차량을 제동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타이어와 노면이 닿음으로써 차량의 동작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타이어의 접지면(Tread)이 최대한 트랙의 노면(보통 아스팔트 타막)과 가능한 많은 면적이 접촉되게끔 가능한 한 타이어를 직각으로 설치하는 것이 좋다.
#2 무게 배분
두번째는 무게 배분(Weight Distribution)이다.
차량의 현재 상황, 이를 테면 현재 코너링을 하고 있는지, 브레이킹을 하고 있는지, 가속을 하고 있는지 등에 맞게끔 차량의 무게(weight)가 정확한 양으로 분산되어야 함은 . 이는 이전 무게 배분 관련 포스팅에서 무게 배분의 중요성에 다루었던 적이 있으니 참고하자. 이때 동시에 차량의 전체적인 공기역학저거 플랫폼을 안정적으로 유지한 채로 무게를 잘 분산시켜야 한다.
이러한 위 고려사항들에 대해 우리는 차량의 여러 설계 요소를 이용해 잘 통제(control)할 수 있다. 여기서 드디어 서스펜션(Suspension)이 등장한다. 바로 위 고려사항들은 대부분 서스펜션에 의해 통제되고 규제된다.
서스펜션이란?
서스펜션(Suspens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매달다' 또는 '걸다'이다. 서스펜션은 문자 그대로 차량와 바퀴를 매달아 주는, 즉 차량과 바퀴를 연결해주는 장치이다. 현가장치 또는 현수장치 라고도 부른다.
서스펜션은 노면 충격의 흡수와 타이어 접지력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충격 흡수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동차에 엔진, 브레이크, 타이어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로, 이게 제대로 세팅되어있지 않으면 자동차 운전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운용 난이도가 대단히 높아진다. 충격 흡수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차의 거동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부품이다.
노면을 주행하며 생기는 충격이 차체나 탑승자에게 전달되기 전에 흡수하여 차량의 내구성을 보존하고 승차감을 개선하며 탑승객의 피로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초창기의 마차나 자동차 등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아 승차감이 매우 불편했으나 기술발전으로 인해 자전거 체급을 넘어서는 각종 차량에 필수적으로 장착하는 물건이 되었다.
서스펜션 설계 (Suspension Design)
잠시 차량의 구조를 살펴보자. 차체(섀시, Chasis), 즉 뼈대를 만든 후 여기에 우리는 바퀴를 달아야 한다. 먼저 우리는 앞 바퀴 2개와 뒷 바퀴 2개를 준비한다. 그리고 앞 바퀴 2개끼리 그리고 뒷 바퀴 2개끼리 연결하기 위한 바퀴 축(Wheel Axle)을 준비한다. 이제 바퀴 2개가 장착한 바퀴 축을 차체에 고정시켜야 한다.
먼저 단순하게 한번 바퀴 축이 차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바퀴 축과 연결되어 있는 바퀴는 자유롭게 회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바퀴 축이 차체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바퀴 축은 차체와 함께 하나의 고정된 단위로 움직인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차량이 매끄러운 노면을 지난다고 생각해보자. 요철이 없기에 차량은 매끄럽게 움직인다. 하지만 이동 중인 노면에 요철이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차량이 요철을 밟는 경우, 차체와 고정되어있는 바퀴 축은 요철로부터의 충격을 그대로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차량은 심하게 위아래로 흔들리게 된다. 차량에 바퀴 축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이들은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차체가 딱 그 요철에 의한 만큼의 궤적대로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앞 바퀴가 먼저 요철을 밟고 뒷 바퀴가 그 뒤에 밟을 텐데, 이 때 차량이 받는 충격은 동일하므로 오르고 내리는 궤도 또한 동일할 것이다.
이러한 차량에 내가 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해도 정말 승차감이 최악이다. 운전자 뿐만 아니라 같이 탄 동승자의 목과 허리가 그대로 고장 날 것만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차체에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잠재적으로 차량에 큰 손상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요철(요철은 트랙 자체에 있는 요철이 될 수도 있고, 주로 F1에서는 연석이 될 수도 있다)을 밟고 차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이면서 반응하는 것은 무게 측면에서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차량이 요철을 밟으면 타이어에 무게가 하나도 안 실리게(unload) 될 수 있다. (차량이 붕 뜨는 경우) 반대로 타이어에 무게가 너무 크게 실리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차량이 붕 뜬 후에 착지하는 경우) 이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운전자의 입력 값들, 즉 조향, 가속, 브레이킹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앞 바퀴가 들린 상황에서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직관적인 해결책 : 스프링(Spring)
한번 스프링(Spring)을 달아보자. 휠 마운트(Wheel Mount)와 섀시 마운트(Chasis Mount)에 스프링을 달아보는 것이다. 왠지 스프링을 달면 차량이 충격을 받는 경우에 스프링이 압축하면서 그 충격을 흡수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스프링의 원리를 잠깐 살펴보자. 스프링이 충격을 흠수하면 스프링의 모양이 변형되게 된다. 자신의 모양을 바꿈으로써 받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대신 그 흡수한 에너지를 위치 에너지(Potential Energy)의 형태로 갖고 있는다. 스프링의 압축으로 차체가 받는 충격을 스프링에 저장함으로써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여주는 것이다. 스프링을 통해 차량이 연석을 밟게 되어도 차체 자체는 덜 위로 올라갈 것이고, 이전에 아무것도 달지 않았던 때보다는 부드럽게 반응할 것이다.
참고) 고무?
고무의 경우, 고무의 형태가 (압축되는 것이 아닌) 늘려짐으로써 위치에너지를 가진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아주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고무와 비슷하게 스프링 또한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강하다. (탄성!) 스프링이 압축을 통해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면 가지고 있을수록, 그것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저장하고 있던 힘을 바깥으로 방출해버린다.
이러한 스프링의 성질 때문에 오히려 차가 더 심하게 위아래로 흔들릴 수 있다. 운전자든 차량 설계자든 차량이 운행될 트랙의 상태를 100% 파악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트랙에 요철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얼마나 불규칙적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등 이러한 트랙의 요소들은 주행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말인즉슨 요철을 밟을 때 차량이 어떻게 흔들릴지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단순히 스프링만 단다면 차량을 조작하기 어렵고 따라서 주행하기도 굉장히 어려워진다.
궁극적인 문제...
위에서 언급한 문제의 본질적인 이유는 스프링이 흡수한 에너지가 차량의 에너지 시스템(계)에 계속해서 존재하기 때문. 스프링이 흡수한 에너지를 차체로 방출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스프링이 흡수한 에너지를 그냥 증발시켜버린다면? 에너지를 차체로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그냥 공중분해, 즉 소멸시켜버리면 어떨까?
댐퍼(Damper)의 등장
여기서 댐퍼(Damper)라는 녀석이 등장한다. 우리는 흡수한 에너지를 살며시 소멸시키기 위해 충격 흡수기(Shock Absorber)를 스프링에 달 수 있다.
흔히 어린 시절 자전거에 달려있던 쇼바는 사실상 충격 흡수기이다. ('쇼바'는 일본어의 잔재니 사용을 자제하자) 자전거에 달려있는 충격 흡수기와 동일하게, 차량에 장착되어 있는 충격 흡수기는 유압식의 형태이다.
댐퍼(Damper)의 구조는 이러하다. 스프링 안에 피스톤 실린더를 위치해놓은 후 스프링의 양 끝에 연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실린더에는 기름이 차 있고, 피스톤에는 자그마한 구멍들이 송송 뚫려있다. 또한 기름이 차 있는 챔버 밖에 한번 더 실린더로 감싸고 그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이렇게 되면 챔버 내에 있는 기름이 밖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피스톤이 위아래로 움직일 수 있다.
근데 이렇게 피스톤을 움직이는 동작에는 꽤나 힘이 들어간다. 물이 찬 주사기의 피스톤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해도 굉장히 뻑뻑하다.
스프링을 설치했던 차량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스프링 끝에 댐퍼를 설치하면 위와 같은 형태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스프링을 댐퍼 스프링(Damped Spring)이라고 한다.) 댐퍼 스프링은 기존 그냥 스프링과는 어떻게 다르게 동작할 지 살펴보자.
차체에 충격이 가해지면 스프링이 압축될텐데, 이때 받은 충격이 스프링과 댐퍼로 분산된다. 충격의 일부가 댐퍼로 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스프링이 압축되기는 할테지만 이전보다 좀 덜 압축될 수도 있다.
반대로 압축된 스프링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돌아갈 때를 생각해보자. 스프링이 방출하는 에너지 중 일부는 차체로 가지만 일부는 댐퍼의 피스톤을 움직이는 데에 사용된다.
정리하면 스프링에 충격 흡수기(Shock Absorber)를 달면 이전처럼 스프링의 탄성이 심하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고, 이를 통해 차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어느 정도 줄이면서 차체가 안정될 수 있다.
댐퍼 커스터마이징 (Damper Customizing)
가만 생각해보면 '이럴거면 차라리 애초에 스프링을 적당한 스프링으로 골라 달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상황에 따라 스프링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고, 바꾼다 하더라도 적당한 장력을 갖도록 조정하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댐퍼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스프링이 압축될 때 얼마나 피스톤이 쉽게 눌려지는지와, 스프링이 원상복귀 될 때 피스톤이 얼마나 쉽게 풀리는지 그 힘을 조절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챔버 내의 구멍을 더 크게 뚫는 다면? 압축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만약 구멍을 더 작게 만든다면 원상복귀를 이에 비해 어렵게 할 수 도 있다.
참고) 충격 흡수기는 속도에 민감하다. 즉 velocity-sensitive이다. 빨리 피스톤을 누르려 하면 그 저항은 더 세진다.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