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포스팅
지난 포스팅에서 트랜스미션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트랜스미션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엔진 토크를 바퀴에 전달할 때 전달되는 토크의 크기를 상황에 맞게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트랜스미션이 실제 F1 차량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아보자. 그리고 내연기관의 토크와 전기모터의 토크의 차이점, 기존 내연기관에 전기모터가 추가된 하이브리드 엔진을 왜 사용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실제 F1 차량에서의 트랜스미션
#1 차량 출발 시
차량이 정지해있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때는 전체적인 차량의 동력 시스템을 동작시키기 위해 많은 토크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이 출발할 때 첫 기어인 1단 기어의 기어비를 크게 해 토크를 크게하는 것이다.
기어비가 큰 트랜스미션 기어(e.g. 1단 등)로 주행하면 기어가 회전하는 속도가 더 느리다. 잘 생각해보면, 기어비가 10:1이기 때문에 1단 기어를 한바퀴 회전시키려면 크랭크샤프트 기어를 10바퀴 돌려야 한다.
여기서 보면 우리는 트랜스미션 1단 기어를 이용해서 큰 토크를 얻어냈지만 회전 속도는 (크랭크샤프트가 회전하는 것에 비해) 매우 느리다.
정리하면, 기어비를 통해 큰 토크를 얻는 대신 회전 속도를 희생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2 차량 이동 시
차량이 움직이고 난 이후부터는 차량 바퀴의 회전 속도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데에 필요한 토크는 정지해있던 차량을 움직일 때보다는 적다.
그 대신 같은 엔진 출력을 낼 때 고속에 도달하려면 차량의 바퀴를 더 빨리 회전시켜야 한다. 이때 회전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토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지해있는 차량을 구동시킬 때에 비해 적기 때문에, 이때는 기어비가 작은 고단 기어를 사용해야 한다.
연비 주행
우리가 흔히 적은 기름으로 많은 거리를 가기 위해(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연비 주행'을 하는데, 이 연비 주행을 생각하면 '차량 바퀴의 속도를 유지하거나 증가시키는 데에 필요한 토크가 적다'는 말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연비 주행도 결국 차량이 움직이고 난 이후 엑셀을 무리하게 밟아 RPM을 높이지 않고도 차량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엔진 출력 보존의 법칙?
일반적인 운동량 손실을 차치하고 보면, 엔진과 차량바퀴 사이에서 시스템 내의 엔진 출력 손실은 없다. 다시 말해, 부품 간의 마찰과 같은 일반적인 에너지 손실을 배제한다면, 엔진이 500bhp의 출력을 내면 크랭크샤프트에 마찬가지로 500bhp의 출력이 전달되고, 마찬가지로 드라이브 샤프트에도 500bhp의 출력이 전달된다.
이러한 엔진출력은 순전히 엔진의 속력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때 엔진의 속력이라 함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차량 계기판의 RPM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엔진 출력은 순전히 기어를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힘에는 영향이 가지 않는다. 기어를 변화시킴으로써, 즉 변속을 통해 바뀌는 것은 오로지 토크(Torque)와 바퀴의 회전 속도이다. 이때 토크를 높이면 회전 속도를 희생해야 하고, 회전 속도를 높이려면 어느 정도 토크를 희생해야 한다.
여기서 흥미롭고도 중요한 점은 엔진의 출력이 얼마나 높든 낮든 간에 기어비를 충분히 사용한다면, 굳이 엔진 출력을 높이지 않고도 바퀴에 원하는 만큼의 토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키(Torquey) 하다'의 의미
‘오와, 이 엔진 엄청 많은 토크(a lot of torque)를 가지고 있다!'의 의미는 뭘까?
먼저 '엄청 많은 토크를 가지고 있다' 또는 '토크가 높다'는 조금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표현이다. 이 말 대신 '토크 전달이 엄청 즉각적이다' 또는 '엔진이 굉장히 토키(torquey)하구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왜 앞선 말은 잘못된 표현이고, 이러한 표현은 적당한 걸까?
내연 기관 차량의 토크 커브 (Torque Curve)
한번 내연 기관 차량의 토크 커브를 한번 살펴보자.
가로 축은 RPM(Revolution Per Minute)이고, 세로 축은 토크(Torque)를 측정한 것이다. 세로 축 값이 클수록 크랭크샤프트에 전달되는 토크의 양이 크다는 의미다. 여기서 토크는 액슬 샤프트, 즉 바퀴에 전달되는 토크가 아니라 크랭크샤프트에 전달되는 토크임에 유의하자. 이렇게 크랭크샤프트의 토크를 측정하는 이유는 순수하게 엔진 출력으로부터 나오는 토크와 트랜스미션 간의 관계를 보기 위함이다.
위 그래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내연기관으로부터 나온 그래프인데, 그래프를 보면 내연기관으로는 최대 토크를 전기모터와 같이 바로 곧장 얻을 수는 없다. 토크가 최대가 되기 위한 지점(그래프에서 'Breakover torque' 지점)에 도달하려면 특정한 RPM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RPM이 낮은 저 회전수에서 엔진이 점차 출력을 높여 속력을 냄에 따라, 크랭크샤프트에 전달되는 토크가 최대 토크를 낼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최대 토크 도달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
[요약]
1. 마찰력을 이겨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
2. 연료 및 공기를 최적으로 빨아들이기 위한 시간이 필요
여러 이유 중 첫째로 드라이브 트레인(Drive Train, 엔진-크랭크샤프트-트랜스미션-드라이브샤프트-액슬샤프트-휠의 구조를 갖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부품은 대부분 움직이는 부품(moving parts)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품들은 움직이면서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러한 마찰력을 이겨내기 위해 드라이브 트레인 내의 부품들이 움직일수록 엔진은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줘야 한다.
두번째로 엔진의 연소실의 부품들은 실린더에 연료와 공기를 빨아들이는데, 최적의 연료와 공기를 가져오기 위한 엔진의 스피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특정 RPM에 도달해야지만 연료와 공기가 엔진 내부로 들어오는 시간이 최소로 걸린다는 말이다.
그래프를 다시 한번 보자.
엔진이 점점 더 빠르게 동작할 수록 토크도 점점 더 높아진다. 이는 약 12000 RPM 정도에서 최대를 찍고난 후 이 이상 RPM이 높아질수록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는 1) 엔진의 기계적인 저항(resistance)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더불어 2) 실린더가 더 이상 더 많은 출력을 낼 만큼 빠르게 공기와 연료를 빨아들이기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엔진의 최대 토크가 10000~12000RPM 정도에서 형성된다. 이 점은 실제 F1 경기를 보거나 아니면 F1 게임을 하면, 첫 가속 구간 이후에 기어들이 이 10000~12000RPM사이에서 회전수(Revolution)이 유지되도록 속도를 내고, 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토크가 최대 값에 다다를 때까지 어느 정도의 지연(lag)이 발생하는 이유는 '엔진이 최대로 빠른 속도에 다다르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토키(torquey)하다'의 의미
만약 차량이 토키(torquey)하다면, 즉 토크 전달이 매우 좋다면, 처음 출발할 때의 낮은 토크가 드라이버의 가속을 통해 최대 토크로 매우 빠르게 다다른다. 바로 이것이 토키(torquey)하다는 의미! 만약 반대로 차량이 토키하지 못하다면? 최대 토크까지 다다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이다.
전기 모터 차량의 토크 커브 (Torque Curve)
내연 기관과는 다르게 전기 모터는 기계적인 부품들이 그리 많지 않고, 연료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연료와 공기의 주입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실 이전 포스팅에서 봤듯이, 결국 자기장 내에서 로터(Rotor)가 도는 원리를 이용해서 전기모터를 동작시킨다. 아주 심플하기 때문에 엑셀러레이터를 밟는 순간 최대 토크를 낼 수 있다.
* 만약 아래 포스팅을 읽지 않았다면 읽는 것을 추천!
그래프를 보자. RPM이 낮을 때도 최대 토크를 낸다! 그렇기 때문에 차량이 정지해있을 때 출발하는 경우 차량에 강한 토크를 전달할 수 있다. 이게 하이브리드 차나 전기차가 '토키(Torquey)'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결국 엔진 출력을 곧장 바퀴로 전달하기 때문에 토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모터의 토크 커브를 잘 보면 RPM이 어느정도 도달하면 급격하게 토크가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전기모터의 특성 상 발생하는 것인데, 앞선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회생제동의 원리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MGU-K 포스팅 참조)
자기장에 있는 전선에 전류를 흘러 모터가 동작하는데,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특정 방향으로 회전하는 경우 그 반대 방향으로 전류가 전도된다. 특정 RPM 이후 이러한 현상이 만연하며, 이게 기존 흐른 전류를 제압하여 토크 전달의 큰 하락을 가져온다.
F1 하이브리드 엔진에서 모터의 역할
F1 차량과 같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경우, 전기 모터가 앞서 말한 엔진 스피드가 낮을 때 발생하는 토크 랙(lag)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 마치 전기자동차가 즉각적으로 차량의 바퀴에 토크를 전달하는 것과 동일하게,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는 기존의 내연기관에서 랙이 발생하는 구간에서 전기 모터가 토크를 보태주는 것이다.
마지막 정리 : 엔진 출력, 토크 그리고 RPM
다시 강조하지만 엔진이 토키하다는 것은 출력이 좋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토키하다는 말은 엔진에 의해 나온 엔진 출력이 토크를 바퀴로 더 빠르게 전달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엔진 출력은 토크의 크기와 관련이 없고, 토크 전달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엔진 출력 (Engine Power)
= 토크 (Torque) x RPM
간단한 산식으로 '엔진 출력 = 토크 * RPM'이다. 이 산식에서 만약 토크 값이 상수(constant)라면, RPM을 높여주면 엔진 출력(power)을 즉각적으로 높여줄 수 있다. 만약 토크 상수 값이 더 높다면 엔진 출력이 매우 빠르게 증가한다. (기울기가 커지기 때문!) 만약 토크 상수 값이 작다면 엔진 출력은 더 느리게 증가한다. (기울기가 작아지기 때문)
즉, 토크는 엔진 출력 자체를 크게하고 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 출력 변화에 따른 RPM 그래프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면 저단에서 엑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즉 엔진 출력을 높이면 순식간에 고 RPM으로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여기에 이유가 있다. 저단일수록 기어비가 크기 때문에 토크 상수 값이 높고, 이 때문에 기울기가 가파라지기 때문이다.
높은 토크 엔진이 더 출력이 높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높은 토크는 엔진 출력을 빠르게 올려주는 것 뿐이다.
참고) Formula E 차량은 토키하다.
Formula E의 경우에는 F1 차량보다 더 토키하다. 애초에 내연기관 엔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기모터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지연(lag)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며
[정리]
높은 토크는 엔진 출력을 빠르게 높여 준다.
높은 토크는 엔진 출력 자체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2개에 걸친 포스팅으로 토크(Torque), 트랜스미션의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정리를 마쳤다. 차량의 계기판에 RPM이 괜히 있지는 않을 터이고, 그동안 RPM 계기판을 보고 대략적인 개념만 알았지 뭔가 했었는데... 이번 정리를 통해 깔끔하게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