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에서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F1 헬멧의 역사 중 중요한 항목들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 포스팅에서 드디어 마지막으로 현대의 포뮬러원 헬멧에 대해 자세히 파헤쳐보려고 한다.
* 헬멧 포스팅은 따로 읽으면 다소 두서없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에, 1편부터 시리즈로 쭉 읽어보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오늘날 헬멧을 이루는 단단한 껍데기의 구조는 제조사마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층층이 겹겹이 쌓여있는 구조이다.
과거 초창기 헬멧 또한 동일하게 캔버스를 겹겹이 쌓은 후 레진(Resin)이라는 물질을 굳혀 단단하게 만들었으나, 현대에는 각종 탄소화합물이나 금속, 카본 파이버(Carbon Fiber), 케블라(Kevlar)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카본 파이버는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함과 더불어 구조적 강성을 위한 것이었다.
관통에 강한 케블라(Kevlar)
케블라(Kevlar) 또한 노멕스와 같은 합성 섬유다. 케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다.
첫째, 케블라(Kevlar)는 불에 대한 내성이 좋다. 이는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노멕스(Nomex)의 특성과 동일하다. 헬멧의 껍데기에 케블라를 사용한다면 드라이버의 머리에 전달되는 열기를 줄여줄 수 있다.
둘째, 케블라(Kevlar) 특유의 타이트하게 잘 짜여진 강한 구조는 날카로운 물체가 잘 관통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줬다. 즉 관통에 대한 내성이 좋다. 케블라(Kevlar)는 서로서로 잘 엮이고 짜여져있기 때문에 케블러 섬유를 하나하나 분리시키고 떼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케블라(Kevlar)가 방탄조끼에 사용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관통에 내성이 좋은 소재로 헬멧을 만듦으로써, 날카로운 물질이나 파편으로부터 선수들의 머리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단한 헬멧에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패딩(Padding)
갑작스럽게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머리가 심하게 움직이는 경우 뇌가 위험할 수 있다. 머리는 안 다쳐도 뇌는 다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뇌가 갑작스럽게 움직이면 뇌가 두개골에 부딪히는 효과가 있어 뇌에 매우 좋지 않다. 뇌는 하나의 푸딩(Pudding)과 같다. 통조림 안에 치즈들이 이쁘게 놓여있었는데, 통조림을 흔들게 되면 엉망진창으로 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급격한 가족이나 감속으로 인해 뇌 주변의 혈관이나 조직이 찢어지고, 판막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신경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서 패딩(Padding)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헬멧 내부에 푹신한 패딩을 대면 머리가 살짝 부딪힐 공간을 조금 줄 수 있다. 충격 시간을 길게 해서 머리에 가해지는 운동량을 줄이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하지만 당연히 머리에 충격은 없어야 하므로,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변형 가능한' 재질이어야 한다.
위와 같이 헬멧의 내부에는 여러 종류의 패딩(Padding)과 라이닝(Lining)이 있다. 이와 같은 변형 가능한 충격 흡수재를 사용하면, 차량이 가속하거나 급격하게 감소하거나 또는 어딘가에 충돌할 때 드라이버의 뇌를 보호해 줄 수 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웠듯, 충격량은 충격 시간에 반비례한다. 충격 시간을 길게 해주면 그만큼 충격량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차량의 범퍼(Bumper)와 에어백(Airbag) 또한 충격 시간을 늘려주기 위한 것이다. 운전자에게 충격이 가기 전 범퍼가 충격 흡수재 역할을 하여 충격 시간을 늘려준다. 에어백 또한 마찬가지로 운전자의 머리가 핸들이나 앞 유리에 닿기 전, 푹신한 충격 흡수재의 역할을 해서 그 충격을 줄여준다.
이처럼 헬멧 안에 있는 패딩과 라이닝 또한 마찬가지로 헬멧이 충격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힘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는 이전에 배리어에 대해 포스팅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타이어 배리어와 동일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헬멧에도 스며있는 공기역학
현대 헬멧을 자세히 보면 뭔가 둥그런 유선형의 모양이라기 보다는, 뭔가 구조물 같은 것들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놀랍게도 공기역학을 위한 것이다.
해일로(Halo)가 처음 도입되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부품이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는데, 콕핏(Cockpit)에 있는 드라이버의 머리가 바람을 맞게 될 때 항적(wake)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항적(wake)은 공기역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왜냐하면 차량의 드래그를 발생시켜 속도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0.001초를 다투는 F1에서 이러한 조그마한 항적 또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뿐만 아니라 일반 헬멧은 난류를 발생시키는데, 이로 인해 헬멧이 심하게 흔들리게 되어 드라이버의 목이 불안정해져 위험함을 더해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헬멧에 몇몇 구조물을 부착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기 흐름이 더 효과적으로 되게끔 해서 일반 둥근 헬멧보다 드래그를 줄여줄 수 있으며, 드라이버의 목이 흔들리지 않게 안정적으로 해주었다.
바이저 (Visor)
오늘날의 바이저는 먼지나 벌레, 앞 차로부터 날라오는 타이어 러버나 파편 등을 막아주는 데에 사용된다. 레터박스(letterbox)도 구멍이기 때문에 주행 중 이곳으로 물체가 튀면 굉장히 위험하다. 따라서 바이저는 폴리카본(Polycarbonate) 물질로 만들어 진다. 이는 강성이 강하며 불에 내성이 있고, 충격이 있을 때 변형되어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한다. 또한 관통에도 내성이 있다.
또한 날씨로 인해 조도가 바뀌는 경우에 대응하기 위해, 조도 상황에 따라 다른 틴트를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바이저는 여러 겹으로 되어 있어 뜯어 사용할 수 있다. 마치 휴대폰 액정 필름과 비슷한 것으로 한쪽 면이 약간 스티커 재질로 되어있다. 경기 중에 바이저가 헤졌거나 먼지가 많이 붙었거나 하는 경우 떼어서 버릴 수 있다.
자일론 스트립 (Zylon Strip)
2009년 헝가리 그랑프리(Hungarian Grand Prix)에서 브라질 드라이버 펠리페 마사(Felipe Massa)가 시속 270km의 스프링에 부딪혀 사고가 발생하여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자일론 스트립(Zylon strip)이 바이저에 추가되었다. 자일론(Zylon)은 카본 파이버보다 충격 흡수에 능했고, 이로 인해 헬멧 부위 중 충격에 취약한 부위인 눈 위쪽에 추가되었다.
2019년, 크게 바뀐 헬멧 규정
헬멧 디자인에 새로운 높은 기준이 생겼다. 처음에는 헬멧 제조사들이 지켜야 할 기준들과 파라미터들이 있었다. Bell, Schubert, Arai 와 같은 헬멧 제조사들은 이러한 스펙을 지켜야 했다.
과거 헬멧에 비해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드라이버들이 볼 수 있는 레터박스(letterbox)가 더 작아졌다는 점이다. 드라이버들의 시야에는 좋지 않지만, 이전에는 더 시야가 안 좋은 헬멧도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듯하다.
사실상 이러한 이유는, 이전에 사용되던 자일론 스트립(Zylon Strip)이 헬멧의 메인 바디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FIA 8860-2018
FIA는 새롭고 더 까다로운 테스트 기준을 마련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테스트는 헬멧이 승인되려면 반드시 버텨내야 하는 테스트이다. 이 테스트는 수년간 여러 주요 헬멧 제조사와 함께 연구한 끝에 나왔다. 그 기준은 FIA 8860-2018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표준 충격 테스트: 헬멧은 34km/h의 속도로 충격을 받는다. 이때 “운전자 머리”의 최대 감속은 총 275G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2. 저속 충격 테스트: 헬멧은 21.59m/h의 속도로 충격을 받는다. 이때 “운전자 머리”의 최대 감속도는 최대 평균 180G로 200G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3. 낮은 측면 충격 테스트: 헬멧이 30.6km/h로 충격을 받는다. 최대 감속은 275G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4. 고급 탄도 보호 테스트: 225g의 금속 발사체가 시속 250km로의 속도로 헬멧을 향해 발사된다. 뚫리거나 최대 감속은 275G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5. 크러시(Crush): 높이 5.1미터 무게 10kg의 물건을 헬멧 위로 떨어뜨려 전달된 힘은 10kN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6. 쉘 침투 테스트: 4kg의 임팩터가 27.72km/h의 속도로 헬멧에 떨어진다.
7. 바이저 관통 테스트: 공기 소총으로 바이저에 1.2g 펠릿을 발사한다. 펠릿이 헬멧 내부를 관통해서는 안 된다.
8. 바이저 코팅 테스트: 바이저 코팅은 외부 요인에 의해 색상 및 시력이 크게 변경되거나 왜곡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송신기를 사용해 테스트한다.
9. 고정 시스템 테스트: 롤오프 테스트 및 동적 테스트는 턱끈과 부착물의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된다.
10. 친 가드 선형 충격: 19.8km/h에서 전체 머리 형태로 충격 테스트를 한다. 최대 감속은 275G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11. 친 가드 크러쉬 테스트: 턱 가드를 망치로 두드려 충격을 견디는 능력을 테스트한다.
12. FHR 기계적 강도 테스트: 헬멧의 정면 머리 지지대의 부착 지점의 강도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한다.
13. 투영 및 표면 마찰 테스트: 헬멧의 표면이 균일하고 마찰이 최소화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헬멧을 테스트한다. 외부 쉘 표면은 BARCOL 경도 테스트를 거쳐 침투 저항성을 테스트한다.
14. 인화성 테스트: 헬멧은 790℃ 화염에 노출되며 헬멧은 자체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FIA 8860-2018)
예를 들어, 헬멧 안의 머리의 감속(Deceleration) 정도는 충격 테스트로 측정된다. 또한 고속에서의 데브리와의 충격으로 인한 관통 테스트나 특별히 바이저가 관통에 괜찮은지 확인하는 테스트도 있다.
다양한 헬멧 시스템
헬멧에는 드링킹 시스템도 있다. 경기 중 수분 섭취를 위해 선수들은 물을 마실 수 있는데, 헬멧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빼 선수들이 그 호스를 빨아 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인터콤 시스템도 헬멧에 부착되어 있다. 드라이버들은 각자 귀에 몰드된 이어플러그를 끼고 있어 피트 월(Pit Wall)과 통신이 가능하다. 이 이어플러그에는 가속도계도 있어 충격이 큰 경우 즉각적으로 메디컬 카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참고 | 실제 벨(Bell) 사에서 에프원 선수들이 사용하는 헬멧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책임지지 못한다.)
마치며
헬멧에 각종 리버리, 스폰서쉽, 바이저가 부착되면 헬멧이 바뀌어도 이전의 헬멧들과는 별 다른 점은 없어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해일로와 같은 안전장치들과 같이 헬멧 또한 계속해서 진화하여 선수들의 안전을 보호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드디어 헬멧의 역사 시리즈가 끝이 났다. 자료는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는데, 그만큼 정리도 잘 되었고 배운 것도 많은 것 같다.
앞으로 다룰 포스팅은 많다. 디퍼런셜(Differential), FRIC 서스펜션, F1 트랙을 만들 때 고려하는 사항, F1 플래그(Flag) 규정 등 너무 많은데, 시간이 될 때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