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모터스포츠의 경기 규정 상, 선수들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 착용은 필수다. 헬멧은 당연하게 선수들의 머리를 보호하지만, 이 뿐만 아니라, 차량 바디의 리버리와 동일하게 광고판으로도 사용되기도 하며, 누군가를 기리거나 어떠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선수들은 특별한 헬멧을 제작하여 착용하기도 한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너무 당연해서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포뮬러원의 헬멧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안전(Safety)'의 관점에서 포뮬러원의 헬멧이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해왔는지 포뮬러원 헬멧의 역사를 다뤄볼 예정이다.
이곳저곳에서 자료를 수집해보니 포뮬러원의 역사가 그리 짧지 않기에 자료가 무척이나 방대하다. 그리하여 하나의 포스팅으로 포뮬러원 헬멧의 역사를 끝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여러 포스팅에 걸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무쪼록 긴역사 동안수많은 연구원들과 과학자들이 헬멧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지금부터 한번 살펴보자!
1920~30년대, 면 모자와 고글
공식적인 F1 경기는 1950년이지만,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F1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러피안 그랑프리 챔피언십(European Grand Prix Championship)이 있었다. 이 당시 패독(paddock)에서 안전에 대한 개념이 맨 처음 입 밖에 오르기 전에, 수많은 드라이버들이 차량 사고로 인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당시 드라이버들의 머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한 쌍의 고글과 면 또는 가죽으로 된 모자뿐이었다.
고글을 쓰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먼지, 모래, 돌, 기름과 같은 물질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면 또는 가죽으로 된 모자는 그저 달리는 자동차에서 맞는 바람 때문에 드라이버들의 머리가 시릴까 봐 착용했다. 다시 말해 추위로부터 따뜻하려고(?) 착용되었다.
가끔 현재 바이저(visor)라고 불리는 것의 전신 격이 되는 용접공이 착용하는 얼굴 보호대(?) 또한 헬멧에 붙여지기도 했다. 이 이유는 드라이버들 중 꽉 조이는 고글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글이 너무 조인다고 생각한 드라이버들은 위처럼 조금 덜 조이는 바이저와 같은 것을 선호하기도 했다.
대체 왜 면 모자와 고글만...?
지금 생각하면 확실히 어처구니가 없기는 하다. 이것도 안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당시에는 안전이라는 개념이 크게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위험해 보이지만 그 당시 안전에 대해 딱히 생각하지 않았을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 당시 차량 기술로는 차량의 속도가 말보다 빠르지 않았다. 당시 말을 타는 사람들 중 헬멧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게다가, 만약 당시 사람들이 "위험하니까 헬멧을 만들어야겠다"라고 다짐을 한다 하더라도, 헬멧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없었을뿐더러 당시 기술로는 가능한 해결책 또한 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드라이버들은 천 쪼가리로 된 모자에 고글만 쓴 것이다.
옛날 모터스포츠의 안전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당시에는 차량과 관중 사이를 구분하는 배리어도 없었을뿐더러, 차량이 트랙에서 튕겨나갈 때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그저 중간중간에 지푸라기 더미만 있었다. 당시 안전에 대한 개념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배리어가 궁금하다면?
1914년, 최초의 헬멧이 발명되다
사실 1914년 영국의 내과 의사인 에릭 가드너(Eric Gardner)가 모터 사이클 헬멧을 최초로 발명했다.
이 헬멧은 레진(Resin)을 이용하여 캔버스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레진(Resin)은 사전적 의미로 나무의 수액이나 이것이 굳은 것을 의미한다. 현대에는 고무나 플라스틱과 같은 합성수지를 의미하는데, 당시에는 수액이 굳은 것을 의미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닥터 에릭 가드너는 최근에도 크게 사고가 난 맨섬의 티티 레이스, 다른 말로 Isle of Man TT의 당시 의료진이 었는데, 몇 년 동안 모터사이클 경기에서 뇌진탕(concussion)이 많이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닥터 가드너는 헬멧을 개발했고, 당시 모터사이클에서 라이더는 헬멧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규정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모터사이클 스포츠가 모터스포츠 전반의 헬멧 기술의 개발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터사이클 스포츠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끔 해줬다.
이후 에릭 가드너의 발명 덕분에 1920년대에서 1930년대에 많은 라이더들과 드라이버들이 헬멧을 쓰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천 쪼가리 모자에 고글을 쓰는 사람은 많았다.
1952년, 헬멧 착용의 의무화
이후 말보다 빠른 차량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선수들의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헬멧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1952년 처음으로 헬멧 착용이 의무가 되었다.
이때 당시 사용된 헬멧은 폴로라는 스포츠에서 착용하던 헬멧이었다. 이 폴로 헬멧은 기본적으로 단단한 모자인데, 제작은 앞서 언급한 모터사이클의 헬멧과 비슷하다. 동일하게 면을 겹겹이 쌓은 후에 레진에 담가 굳혀 단단한 껍데기를 만들었다.
생김새는 공사장에서 인부분들이 착용하시는 모자나 군대 방탄모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헬멧은 귀까지 덮지는 않았기 때문에 헬멧 안에 귀까지 덮는 면 모자는 여전히 착용했다.
당시 헬멧을 꾸미는 것도 유행했다. 지금처럼 다양한 리버리가 붙는 것은 아니고, 심플한 형태의 무늬를 헬멧에 꾸며서 본인 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도 했다. 1950년대에 데이먼 힐(Damon Hill)의 아버지인 그레이엄 힐(Graham Hill)은 헬멧을 단순한 패턴으로 꾸며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기도 했고, 이는 당시 꽤나 유행했던 패턴이어서 사람들이 이 패턴을 갖는 모자를 착용하기도 했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