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 -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개인 평점: ★★★★☆
한줄평: 더 나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한 줌의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팬데믹 철학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등장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마스크를 끼고 출퇴근을 하고,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하며, 마스크를 끼고 이야기한다. 사회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2년 전에 올렸던 나의 SNS 게시물을 보면 무의식 속에서 그 SNS 게시물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진과 동영상 속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벗은 채로 1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모여있기 때문이다. 한 1-2초 정도가 지나면 '아, 이때는 이랬지!' 하면서 정신을 차리곤 한다.
이렇게 코로나 바이러스, 즉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모든 것이 무뎌져 있었다. 국가에서 팬데믹을 통제하기 위해 실시하는 모든 정책들과 제도들이 이제는 정말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팬데믹 루틴 속에서 '무뎌진 채로'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경을 선물해 준 책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라는 책이다.
책에서는 정말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흑인인권운동과 반인종차별주의, 계급투쟁, 지구 온난화와 같은 생태학적 문제, 의료 제도 문제, 국제 분쟁, 정신적 붕괴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저자는 팬데믹과 연관 지어 정말 제대로 '사유'한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죽기 직전 내뱉었던 'I can't breathe'라는 문장은 전 세계적으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은 중요하다)' 흑인 인권운동. 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과 어떤 문제가 있을까? 이 운동은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를 위한 운동인가? 흑인 인권운동을 열심히 행하고 있는 백인들의 태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난 후 계급 불평등은 더욱 더 심해졌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격차가 더 심해졌다는 말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꽤나 '누리고'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국가의 통제와 제도 하에, 어떻게 보면 사회적 연결망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택근무나 공유 오피스와 같은 것들을 활용하며 사회적으로 잘 고립되어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어떠한가? 재택근무나 공유 오피스를 사용하지 않는 직종을 가진, 예를 들면 배달을 하는 사람들이나 공장에서 다 같이 모여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히려 이들은 바이러스에 심하게 노출되는 집단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그저 사회적으로 잘 고립될 수 있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간의 계급 격차를 커지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인종차별주의나 계급투쟁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다른 사회적 문제들을 팬데믹과 엮어 많은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세상에 만연한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할 수 없다. 개인이 모인 집단이, 그중 각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가들의 손에 의해 가능하다. 하지만 단 국가를 이루는 국민들의 의견을 대변해야만 이것이 의미가 있다. 대통령, 수석, 주석과 같은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가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히 고민하게 된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강요하는 국가 정부를 극도로 증오하며 시위를 펼친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을 우파, 트럼프 주의자 또는 뉴라이트 포퓰리스트라고 칭한다. 반면 이들을 비판하며 도덕적 분노를 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이들을 좌파라고 칭한다. 각자 세상을 좋게 만든다고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 속은 상대가 가진 기득권을 빼앗거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에 목을 매고 있다. 자유를 내세우는 포퓰리스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여성들이 더 많은 권력을 잡고 사회에 진출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의 전체적인 구조는 달라지면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지만 나는 계속 부유해야 한다. 이것도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를 읽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나는 당연히 그저 국가와 정부가 시키는 대로 마스크를 썼다. 누군가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저항한다. 저자와 같이 현 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 기득권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100% 공감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저자도 한 개인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의견을 냄으로써 세상이라는 배가 방향을 조절해가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자. 쿠테타로 인한 군부정권의 언론 통제로 우리나라 시민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국민이었다. 하지만 여러 지성인들, 사회운동가들, 대학생들과 같은 누군가의 노력으로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까지 발전했다. 금기시되는 도서를 몰래 한구석에서 읽어가며 목숨을 걸고 시위하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덕분에 지금의 우리나라까지 발전한 것이다.
현재 민주주의가 그렇다고 완벽하지는 않다. 그럼 우리는 마치 1960년대에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민중들처럼 가만히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더욱 우리 모두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니 포퓰리스트니 좌파니 우파니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상황의 근본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저자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의 말 대로 상황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들을 차별적으로 생각해서 는 안 되며, 상황의 근본을 파악하여 근본적으로 사회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 책이 선물해주는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안경을 끼고 더 나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한 줌의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담
책이 굉장히 어려워서 읽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내가 이과임과 더불어 책을 잘 읽지 못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책의 난이도는 상당한 것 같다. 특히 철학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해서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좀 많았다. 매번 검색하고 기록하면서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책을 읽으면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 읽으면서 기록한 내용들은 개인 기록용으로 블로그에 간략하게 정리할 계획이다.